퇴직연금 운용상품, 내 계좌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지난 2강에서는 DB형과 DC형의 차이, 그리고 각각 어떤 방식으로 퇴직연금이 운용되는지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퇴직연금 계좌가 있다는 건 알지만, 막상 이런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내 퇴직연금 계좌에는 지금 어떤 상품이 들어 있을까?
예금도 되고, ETF도 된다는 데 무엇을 담을 수 있는 걸까?”
퇴직연금에는 다양한 운용상품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상품이나 제한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퇴직연금은 노후소득을 위한 자산인 만큼, 상품의 위험 수준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범위도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은 퇴직연금에서 운용할 수 있는 상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상품을 살펴볼 때 어떤 점을 알아두어야 하는지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1. 퇴직연금 상품, 어떻게 나뉠까?

퇴직연금에서 운용할 수 있는 상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라는 구분부터 알아야 합니다. 퇴직연금감독규정에서는 운용 가능한 상품을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분류는 단순히 상품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자산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는지 한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위험자산은 전체 적립금의 최대 70%까지만 담을 수 있고, 나머지 30% 이상은 반드시 안전자산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반면 안전자산은 적립금의 100%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 전체를 위험 자산으로만 채울 수는 없습니다."
퇴직연금은 장기간에 걸쳐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자산입니다. 가입자의 퇴직급여 전체가 시장 변동에 노출되지 않도록 위험자산에 투자 한도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DB형, DC형, IRP 모두 동일합니다.
DB형·DC형·IRP, 담을 수 있는 상품은 같을까?
위험자산의 종류와 70% 한도는 DB형, DC형, IRP에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DC형과 IRP에서는 개별 주식을 직접 살 수 없습니다. 국내 주식이든 해외 주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에 투자하려면 주식형 펀드나 ETF처럼 간접투자 방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반면 DB형은 회사가 운용 주체이기 때문에 상장주식을 직접 편입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운용 결과가 누구에게 반영되는지도 다릅니다. DB형은 회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운용 성과와 관계없이 근로자의 퇴직급여는 정해진 방식으로 산정됩니다. 운용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해 부족분이 생기면 회사가 이를 채워야 합니다.
DC형과 IRP는 운용 성과가 그대로 가입자의 퇴직급여에 반영됩니다. 좋은 성과를 내면 그만큼 퇴직급여가 늘어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는 DC형과 IRP 가입자에게 더욱 직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2. 안전자산 - ‘안전’하다고 모두 원금이 보장될까?

그렇다면 안전자산에는 어떤 상품을 담을 수 있을까요? 안전자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다른 하나는 실적배당형 상품이지만 퇴직연금에서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상품입니다. 여기서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① 원리금보장형 상품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정기예금·적금, ELB, GIC, RP가 있습니다. 이름은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어떤 금융기관이 제공하느냐에 따라 구분해보면 이해하기가 한결 쉽습니다. 은행·저축은행·우체국에서는 정기예금·적금을, 증권사에서는 ELB를, 보험사에서는 GIC를 제공합니다. RP는 국채·통안채를 담보로 하는 단기 상품입니다. 퇴직연금에서는 이들 상품을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 여부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정기예금·적금과 GIC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기관당 1인 최대 1억 원 한도로 보호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퇴직연금 계좌의 예금자보호 한도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예금계좌와 별도로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은행에 일반 예금계좌와 퇴직연금 계좌를 모두 가지고 있더라도 각각 1억 원씩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ELB와 RP는 예금자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원금은 계약 조건에 따라 보장됩니다.
② 실적배당형 中 안전자산

실적배당형 상품 가운데도 퇴직연금에서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상품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채권형 펀드·ETF, 채권혼합형 펀드·ETF, 그리고 일정 요건을 충족한 TDF가 해당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상품들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처럼 투자 원금이 100% 보장되는 상품이 아닙니다. 위험자산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투자손실 위험이 낮은 상품군에 속하기 때문에 퇴직연금에서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는 것과 원금이 보장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채권형 펀드와 ETF는 채권을 중심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주식 중심 상품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금리 변동 등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채권혼합형 펀드와 ETF는 채권을 50% 이상 담으면서 주식도 50% 미만까지 편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식 투자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분이라면 상품의 구조를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TDF 역시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적립금의 100%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TDF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위험자산 - 어떤 상품을 담을 수 있을까?
위험자산에는 대표적으로 주식형 펀드·ETF, 주식혼합형 펀드·ETF, 상장리츠·상장인프라펀드, 특별자산펀드·혼합자산펀드 등이 있습니다. 최근 퇴직연금에서 관심이 높아진 ETF도 어떤 자산을 담느냐에 따라 분류가 달라집니다. 같은 ETF라고 해서 모두 위험자산은 아닙니다. 채권을 중심으로 담는 채권형이나 채권혼합형 ET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주식형이나 주식혼합형 ETF는 위험자산에 해당합니다.
“ETF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자산을 담고 있는 지가 기준입니다."

상장리츠는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빌딩이나 상가 같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임대료나 매각 차익 등을 배당으로 나눠주는 회사의 주식을 거래소에 사고파는 상품입니다. 상장인프라펀드는 도로·항만과 같은 인프라 시설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배당으로 지급하고,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펀드입니다.
특별자산펀드는 원자재·선박·인프라 등 주식과 채권이 아닌 자산에 투자하고, 혼합자산펀드는 여러 자산을 섞어 운용합니다.
상장리츠와 상장인프라펀드는 DB형, DC형, IRP 모두 투자할 수 있지만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전체 위험자산 70% 한도 안에서 운용해야 합니다. 또한 한 종목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도 전체 적립금의 최대 30% 이내로 제한됩니다.
퇴직연금이라고 모든 투자상품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후자산이라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지나치게 위험성이 높은 일부 상품은 아예 투자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 ETF 입니다. 이 상품들은 기초자산 변동의 배수로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고위험 구조이기 때문에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투자가 금지됩니다.
파생상품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생상품 위험평가액이 40%를 초과하는 상품은 편입할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DC형과 IRP에서는 개별 상장주식을 직접 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국내주식과 해외주식 모두 직접투자는 할 수 없고, 주식형 펀드나 ETF 같은 간접투자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4. TDF - 은퇴 시점에 맞춰 알아서 비중을 조절합니다
앞에서 TDF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한 상품은 예외적으로 적립금의 100%까지 담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TDF는 어떤 상품일까요?
TDF는 Target Date Fund, 우리말로는 목표 시점 펀드입니다. 예상 은퇴 시점을 목표로 정하고, 그 시점에 맞춰 자산 배분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상품입니다. 예를 들어 TDF 2045라면 2045년 은퇴를 목표로 설계된 상품입니다.

작동 방식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은퇴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주식 비중을 높게 유지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주식 비중을 낮추면서 채권이나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립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투자 위험을 점차 낮춰가는 구조를 ‘글라이드패스’라고 합니다. 투자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자산 비중을 조정하지 않아도,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자산 구성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이 특징입니다.
퇴직연금에서 TDF에 별도의 특례를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안정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장기간 운용했을 때 물가 상승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위험한 상품에 집중하면 은퇴 시점에 큰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TDF는 장기적인 분산투자를 유지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위험을 줄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정한 일정 요건을 충족한 상품에 한해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할 수 있는 특례가 적용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가입 기간 동안 주식 편입 비중이 최대 80% 이내, 은퇴 시점 이후에는 40% 이내로 낮아져야 합니다. 다만 모든 TDF가 이 특례를 적용받는 것은 아니므로 가입 전 상품 설명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5. 바빠서 관리하기 어렵다면? 디폴트옵션!
퇴직연금 계좌를 만들어놓고도 어떤 상품에 투자할지 결정하지 못하거나, 바쁜 일상 때문에 계좌를 계속 관리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위해 마련한 것이 디폴트옵션, 공식 명칭으로는 사전지정운용제도입니다.
DC형과 IRP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가입자가 최초 가입 당시 미리 지정해둔 방식에 따라 적립금을 자동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디폴트옵션은 2023년 7월부터 전면 시행됐습니다.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한 뒤 상품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만기가 돌아온 자금이 현금 상태로 남아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다만 DB형은 회사가 직접 운용하기 때문에 디폴트옵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금융기관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을 미리 지정해두면 별도의 운용 지시가 없어도 자동으로 운용됩니다.
“자동으로 운용되더라도 내 계좌 상황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핵심 정리
• 퇴직연금 상품은 감독규정에 따라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나뉩니다.
• 위험자산은 전체 적립금의 최대 70%까지만 담을 수 있으며, 나머지 30% 이상은 안전자산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모든 상품의 원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 DC형과 IRP에서는 개별 주식을 직접 살 수 없으며, 주식에 투자하려면 펀드나 ETF 같은 간접투자 방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 TDF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할 수 있는 상품도 있고, 운용 지시가 없는 경우를 대비한 디폴트옵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퇴직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아는 것에 끝나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의 상황에 맞는 상품을 이해하고, 내 계좌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꾸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살펴본 분류 기준을 바탕으로, 지금 내 퇴직연금 계좌에는 어떤 상품이 담겨 있는지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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